영문법이 영어를 배우는데 도움이 되려면

2023. 3. 25. 16:12영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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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이 어떻게 되세요?” 우리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 어느 정도 대화가 오가면 상대방을 알기 위해 흔히 던지는 질문이다. 그리고 답이 나오면, 그때까지 자기가 받은 인상과 상대방이 말하는 혈액형에 대한 정보와 비교분석에 들어간다. 입으로는, 난 혈액형 같은 거 안 믿는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어느 정도 맞다고 확신한다.

 

 

바쁜 일상을 살면서 모든 사람들을 제대로 금방 파악할 수 없어서, 혹은 최소한의 자기방어 차원에서라도. 우리는 혈액형이라는 한 가지 정보로 상대방을 네 카테코리 중 하나에 밀어 넣는다. 그리고 확증편향에 사로잡혀거 봐, 내가 뭐래라고 외치며 사람들이 맞다고 하는 것을 스스로 확인했다는 자부심 같은 것을 느낀다.

 

영어에 대한 무지도 역시 비슷한 확증편향 반응을 보여준다. 셀 수 없이 많은 영어 문장을 다섯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고 가르친 선생들과 문법책의 말만 믿고, 우리는 아무 의심 없이 새로운 영어 문장을 만나면 그 다섯 가지 문장의 특징에 따라 편가르기를 한다. 예외적인 것들은 예외적일 뿐이라고 무시하고, 모든 문장에 혹은 모든 동사에 오직 다섯 가지 중 한 가지 이름만 허락한다. 그리고 그 달달 외운 다섯 가지 부류의 문장이나 동사만 시험에 나오기를 기대한다. 우리가 매번 새로운 영어 문장을 만나면서 부딪치게 되는 수많은 예외들에 좌절하는 또다른 이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째서 5형식을 영어 문장 분류의 절대 기준이라고 믿고 있을까? 그 원인은 우리나라에 영문법을 소개한 책들이 대부분 미국이나 영국의 영문법 책이 아닌 일본의 영문법 책을 그대로 베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어문장을 다섯 가지 종류로 나누는 것은 미국이나 영국도 아니고 우리나라도 아닌 일본의 원칙인 셈이다. 참고로 우리가 쓰고 있는 모든 영문법 용어들이 한자를 기반으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名詞, 動詞, 前置詞, 關係代名詞 등등.

 

 

우리가 주체적으로 미국 혹은 영국 영문법을 받아들였다면 문장의 형식이나 문법 용어에 차이가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메이드 인 제팬 영문법을 여전히 사용하는 우리는 아직도 모든 영어 문장을 다섯 가지로 파악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더욱이, 영문법 참고서에 등장하는 문장들은 몇 십 년 전에 그 영문법 책을 쓸 때 참고한 몇 십년은 더 된 책에서 가져온 것이다. 따라서 최소한 20~30년도 더 된 그 영어 문장이 현재 영어권 국가에서 사용되는 영어 문장을 대변한다고 할 수 없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문장의 형식을 판별하는 기준은 동사다. 그러나 동사의 성질은 물론이고 문법 자체도 변한다. 문법은 법이니까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문법도 살아있는 언어에 대한 규칙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변하고 또 변한다. 예를 들어, 중학교 시절 영어를 배우면서 신기했던 것이 like라는 단어였다.

 

 

좋아하다라는 의미의 동사로만 쓰이는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전치사로도 쓰였다. 언어학을 배운 지금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좋아한다라는 의미적 유사성이가깝다라는 물리적 유사성으로 옮겨 갔으리라는 문법화적 추측을 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당시만 해도 동사로 쓰이던 like가 갑자기 문법적 범주를 바꿔서 전치사로 쓰이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그러다가 대학원에 진학하고 학생들에게 토익을 가르치면서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새 like가 접속사로 쓰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 like 뒤에 주어와 동사가 당당하게 등장하는 것에 대한 놀라움이 더 컸다. 이런 변화도 물리적 유사성을 바탕으로전치사에서접속사라는 유사한 범주로 간단히 이동한 것 뿐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이처럼 동사에서 전치사로, 동사에서 접속사로 옮아가는 문법 범주의 전환도 가능한 마당에, 겨우 동사 뒤에 명사가 올 수 있느냐 없느냐, 혹은 형용사가 오느냐 명사가 오느냐 정도의 문제는 문제도 아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그 동사가 포함된 문장의 형식을 새롭게 외우고 암기하려고 한다면, 아마도 새로운 문장이 나올 때마다 형식을 확장하여 결국에는 모든 동사가 모든 형식에 속한다고 외우는 것이 편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언어를 배우고 익히는 관점에서 보면, 5형식을 혹은 문법을 앞세우는 것은 언어 습득에 큰 장애가 된다. 문법에 맞는 정확한 문장만 만들려고 하다 보면, 너무 규칙에만 집착하게 되고 언어는 자연스러운 발화로 이어지지 않고 억압될 수 밖에 없다. 문법이라는 것이 원어민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 현상들을 파악하고 분석하여 정리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라. 언어를 배우는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원어민들이 현재 사용하는 규칙을 배우고 그 규칙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 규칙은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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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영어 5형식에서 벗어나는 법은 바로 5형식을 버리는 것이다. 5형식을 버리고 우선 동사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그 동사가 문장에서 어떤 구성요소와 왜 함께 쓰였는지 파악하라. 그러나 이미 알고 있는 그 문법으로 가능한 많은 문장을 만들어 말해 보고 써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많이 읽어보고 많이 들어보면서 쓰고 말해 볼 기회를 늘리는 것이 5형식에서, 결국 문법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미국에서 10년을 살아도 한국어만 쓰면 한국어가 더 늘고, 한국에서 영어를 공부해도 영어를 더 많이 사용하면 영어가 더 느는 것이 당연하다.

 

 

https://blog.naver.com/englishes4me

 

영어는 지식이 아니라 습관이다 : 네이버 블로그

미국 뉴욕대 대학원에서 제2언어습득과 영어교육을 공부했고, 뉴욕주립대 박사과정에서 컴퓨터와 게임 기반 언어학습을 연구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영어를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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