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22. 13:49ㆍ영어교육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과거에는 좋은 대학을 가려면 4당5락, 즉 4시간 자면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말이 있었다. 그러다 경쟁이 더 치열해지면서 3당4락이라는 소리까지 나왔다. 그만큼 오래 공부할수록 성적이 좋아지고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말이었다. 영어 공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학교 공부는 다 똑같다. 아직도. 솔직히 단어, 문법, 독해, 듣기 평가, 모두 오랜 시간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머릿속에 많이 집어 넣어야 점수가 올라간다. 다의어, 유의어, 반의어에 파생어까지 단어를 더 많이 외울수록, 복잡하고 어려운 문법 사항도 더 많이 암기해야 배점이 높은 주관식 문제도 감점 없이 잘 맞힐 수 있었다. 그래서 공부는 엉덩이로 한다는 말도 있었다.

학교에서 교과목으로 배우는 영어와는 다르게 우리가 언어로 사용하는 영어는 앉아 있는 시간이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 더욱이, 머릿속에 더 많은 지식을 집어 넣고 더 오래 가지고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일반적인 공부 방식으로는 영어 실력을 기를 수 없다. 다시 말해, 영어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다. 머리 좋은 사람이라고 다들 영어를 잘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똑똑한 사람이 영어 시험은 잘 보겠지만 언어로서의 영어 수준과 지식 수준은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거지도 영어를 한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행동 발달과 더 관련이 깊은 일종의 습관이다.
영어를 잘 하고 싶으면 영어 단어를 외우거나 문법책을 외우지 말고 영어 근육을 키우는 편이 낫다. 그러나 어떻게 해도 당장은 안 된다. 단기간에 운동을 열심히 하거나 단백질 보충재를 먹는다고 한 번에 근육량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근육이 늘어난다고 정작 운동을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근육보다 더 필요한 것은 충분한 훈련과 연습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근육도 생기게 마련이다. 오래 앉아 있다 보면 살만 찌고 머릿속에는 한 번도 쓸 일이 없는, 아니 오직 시험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영어 지식만 가득하게 된다. 하루에 한 문장이라도 매일 꾸준히 말해 보고, 들어보고, 써보고, 읽다 보면 탄탄한 영어 근육을 기를 수 있다.

어차피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영어를 교과목으로 배워야 하니까, 그래도 취업을 하려면 토익 점수를 높여야 하니까, 뭐 내가 어디 가서 영어를 쓸 일은 없을 테니까. 난 원래 공부를 못하니까 영어도 잘 못 하는 거야, 라는 핑계로 오늘도 애꿎은 머리를 탓하지는 마라. 헐리웃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멋진 대사를 날리고 싶다면, 사전을 뒤지고 문법을 공부할 필요는 없다. 일단, 어디서든 주인공의 대사를 찾아서 한 마디씩 읽어보고, 영화로 다시 들어보며 입으로 익히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영어를 잘 하려면 머리를 잘 굴리거나 엉덩이에 근육을 키우려고 애쓰지 말고, 입이나 손가락을 더 단련해야 한다.
영어로 말하고, 듣고, 쓰고, 읽는데 필요한 근육들을 지속적으로 훈련하고 키우고 유지해 나가는 것이 영어를 잘 하는 길이다. 머리로 아는 단어나 문법 같은 것들은 필요할 때만 참고하는 자료 정도로만 알아두면 된다. 입과 손을 움직여서 의사소통에 필요한 문장을 몸으로 외워라. 그래서 질문이나 자극이 들어왔을 때 번역을 거치지 않고 머릿속 생각 그대로 나올 수 있는 자동화 작업이 필요하다. 그것이 영어 습관이다. 영어로 말을 하기 위해 머릿속에서 번역을 하기 시작했다면 이미 게임은 끝이다. 내가 사용한 말을 상대방이 알아 들었을 때 느껴지는 쾌감을 기억하라. 그 짜릿함을. 나도, 영어 되네? 그 순간이 진정한 영어 습관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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