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유튜브의 대결

2023. 4. 2. 10:53영어교육

728x90
반응형
728x90

 

나는 책을 참 좋아한다. 취미가 서점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다닐 만큼 책이 가득한 서점에 들어서면 왠지 모르게 흥분이 되고, 신간과 베스트셀러 사이를 누비며 관심 가는 책들을 살펴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일종의 불치병이다. 책을 사는 것과 읽는 것 사이의 간극을 좁혀가면서, 한 권씩 사다가 내 방을 가득 채워버린 책들도 다 그런 미련한 사랑의 소치다. 그러다 e북이 등장하면서 보관성이나 구매의 편리성을 이유로 많은 책들을 e북으로 구매하게 되었다. 솔직히, 아마존에서 종이책 원서를 구입하겠다고 몇 배나 비싼 돈을 주고도 운이 나쁘면 한 달 정도 기다려야 하는 배송까지 감내할 바에야, 차라리 kindle 구매를 클릭하게 된다. 그러나 종이책이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협은 사람들의 책에 대한 취향의 변화뿐만 아니라, 책을 대체하고 있는 스크린의 막강한 힘이 서서히 발휘되면서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 pixel2013, 출처 Pixabay

 

아마도, 종이에 대한 스크린의 도전 혹은 지배는 2007년 아이폰의 탄생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전에도 핸드폰은 있었지만, 아이폰의 등장과 더불어 스마트폰이라는 진화된 형태의 핸드폰이 서서히 컴퓨터를 대체하게 되었다. 또한, 컴퓨터가 책상 위를 벗어나 손안으로 들어오면서 그동안 손에 쥐고 있던 신문이나 책, 혹은 문서들도 빠르게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여전히 관공서나 학교와 같은 기관에서는 책이나 종이를 선호하지만, 머지않아 전자 교과서가 종이 교과서를 대체하게 될 것이고 지금도 많은 서류들이 온라인으로 처리되고 있는 실정이다. 변화의 속도가 느려 보여도, 힘의 추는 급격하게 스크린 쪽으로 기울고 있다. 오늘 하루 동안 종이를 더 많이 봤는지 스크린을 더 많이 봤는지 생각해 본다면, 그리고 그 비율이 10년 전에 비해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각해 본다면 내 말에 금방 수긍할 것이다.

 

 

이렇게 종이에서 스크린으로 권력이 이동하는 것은 종이와 스크린에서 주로 사용하는 도구와 관련이 깊다. 종이는 직접 연필로 쓰거나 활자를 찍어 내기에 간편하지만, 컬러를 사용하거나 그림이나 사진을 넣으려면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든다. 더욱이, 동영상을 첨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컴퓨터를 기반으로 하는 스크린에서는 모든 도구를 이용하는데 동일한 혹은 거의 비슷한 노력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0과 1로 표현되는 기계어 덕분에 값을 매기고 변환하도록 프로그램만 잘 짜주면 스크린에 활자를 찍든 그림을 찍든, 검은색과 다른 색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일 뿐이다. 또한, 스크린의 등장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지면서,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이 문자와 소리를 넘어 더욱 다채로워지고 복잡해졌다.

 

 

© bhaguz, 출처 Unsplash

 

아이들이 책은 보려고 하지 않고 유튜브에 빠져 있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우리가 더 이상 볼펜이나 사프를 쓰지 않고, 더 많은 시간을 자판이나 키보드를 두드리며 보내는 것과 비슷하다. 솔직히 말해, 동영상이 보여주는 세상이 책이 보여주는 세상보다 더 생생하다. 그래서 실제 언어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데에는 영상이 더 효과적이다. 책은 능동적으로 읽는 것이고 스크린의 영상은 수동적으로 보는 것이라서, 두 매체가 상상력 개발이나 사고의 깊이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하더라도 다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억지로 책을 가져다주고 읽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음으로써 얻게 되는 효용을 어떻게 스크린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보고 실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책이든 영상이든 어떻게 읽어내고, 어떻게 비판적으로 생각하며,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책도 활자로 적힌 내용만 읽고 소비해 버리는 1차적 기능에만 집중한다면, 영상을 수동적으로 보고 즐기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어느 매체가 더 생각을 자극하고 깊이 사고해 볼 기회를 제공하는가는 각 매체를 어떻게 감상하고, 그 이후에 어떤 활동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학교 다닐 때 억지로 나마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던 것처럼, 간단한 영상을 보더라도 영상의 줄거리와 그 영상이 주는 의미 혹은 개인적 감상을 적어 놓는다면 독후감 이상의 효과가 있을 것이다. 만약 그 감상을 영어로 쓸 수 있다면 그 원고와 영상을 가지고 읽기, 말하기, 듣기도 함께 할 수 있다. 전달 매체에 상관없이 비판적으로 읽고 감상하는 것이 그 매체를 더욱 효과적이고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며, 얼마든지 다른 언어 활동과 연결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 주는 것이다.

 

 

© janeb13, 출처 Pixabay

 

우리가 지금 붓글씨를 배우는 대신 키보드를 빨리 치는 것에 몰두하듯이, 흑백 사진보다 컬러 영상을 선호하듯이, 주산 학원보다 코딩 학원에 아이들을 보내듯이, 종이에서 스크린으로 전환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인 요구다. 그리고 그 흐름을 어떻게 우리 자신과 아이들에게 유리하게 수용하고 활용할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책 육아도 영어 동화책 읽기도 좋다. 그러나 말을 배우기 위해서는 종이에 활자로 적혀 있는 글보다, 스크린 위에서 온갖 목소리와 노래와 리듬과 더불어 살아 움직이는 말이 더 효과적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식당에서 말을 안 듣는다고 유튜브를 틀어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에 있다. 유튜브와 스크린과 컴퓨터와 SNS의 특징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온라인 게임이 그 어떤 책보다 훌륭한 학습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미래를 읽지 못한 출판사들은 이미 찍어놓은 수많은 책과 CD와 DVD의 재고를 팔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시대가 변했다고 새로운 미디어를 도입하는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으니까. 출판사 입장에서는 테이프에서 CD나 DVD로 넘어간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들에게 소문을 내서 아름아름 판다. 외국 유명 출판사에서 만든 거라고. 비싸지만 싸게 준다고. 옆집 엄마가 구입하면, 그 옆집의 옆집 아줌마도 살지 모른다. 블로그에서 좋다고 하면 혹하는 엄마들이 한 둘은 있다. 한때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판매 방식과 비슷하다. 2000년대 초반 나도 번역을 하며 찾아볼 것이 많던 시절, 종이 백과사전 보다 찾기가 쉬울 것 같아 싸게 준다는 말에 혹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CD로 하나 구입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브리태니커를 찾지 않는다. 다들 주머니 안에 위키피디아나, 구글 신이나, 네이버 신을 넣고 다니는 상황이다.

 

 

© benmullins, 출처 Unsplash

 

요즘에는 구하기도 어려운 CD나 DVD 플레이어를 가져다 놓고 영어책 육아를 고집하는 엄마들이 있다. 블로그에 광고하고 자랑하기도 한다. 그 엄마들은 왜 무료인 유튜브를 놔두고 굳이 비싼 책이나 CD나 DVD를 선택했을까? 사실은, 그다음에 무엇을 했는지가 더 궁금하다. 읽기 능력만 개발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읽기가 끝나면 생각을 말하거나 써봐야 하고, 쓴 것을 다시 읽으면서 귀로 들어봐야 한다. 그래야 언어가 발달한다. 우리나라 동화책 읽기와 영어 동화책 읽기는 그 목적이 다르다. 아니, 같아야 하나? 파일 재생도 귀찮아 스트리밍 서비스로 모든 미디어를 즐기는 요즘, 그 안에 생생하게 살아서 펄떡거리는 영어가 넘쳐나는 지금, 왜 우리 아이만 비싼 돈까지 내가며 엄마의 생각과 책과 CD와 DVD 안에 갇혀 영어를 배워야 할까?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