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 14. 12:08ㆍ영어학
영어는 거리에서 태어났다
처음 석사과정으로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 난 언어학에서 언어를 다루는 방법, 즉 설명하고 묘사하는 접근법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영어를 가르치고 번역하는 일에 발을 담그고 있던 나는 규범적 언어학 관점으로 영어에 접근하고 있었다. 그래야 올바른 기준으로 영어문장을 파악하고, 한국어로 더 매끄럽게 해석할 수 있었다. 더욱이, 확고한 영문법을 바탕으로 단단한 영어 지식에 길들여져 있던 나는 학생들에게도 문법적으로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있는 그대로의 영어를 분석하고 설명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어 보였다. 정해진 영어 문법과 규칙을 따라야지, 왜 이상하고 불완전한 영어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몇 번 교수님들과 논쟁을 벌인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식하고 용감해서 할 수 있었던 부끄러운 행동이었다.

1. 언어학은 묘사적이고 설명적이다
언어학은 기본적으로 묘사적이고 설명적이다. 그것이 언어학의 본질이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가를 먼저 있는 그대로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찾는 것이 그다음이다. 그래서 언어학자들은 사람들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말에 집중한다. 그들이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언어가 바로 연구 대상인 것이다.
라틴어를 더 이상 언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현재 라틴어를 언어로 사용하는 사람이 없고, 다만 책이나 문서 속에 글로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학문적인 목적이나 특정한 문서나 서적의 이해를 위해 라틴어를 공부하는 경우는 있어도, 사람들과 의사 소통할 목적으로 배우는 사람은 없다. 즉, 라틴어는 더 이상 언어가 아니다. 아무도 실생활에서 사용하지 않는다. 고로, 실제로 사용되지 않으면 언어가 아니다.
뉴욕의 맨해튼에 있는 뉴욕대학교(NYU)에는 따로 캠퍼스가 없다. 맨해튼의 업타운부터 다운타운까지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늘어서 있는, 보라색 깃발이 꽂혀 있는 건물들이 모두 NYU의 캠퍼스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브로드웨이를 가로질러 학교 건물들 사이를 이동해야 하고,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수업을 듣기도 하며, 센트럴 파크가 교내 잔디밭이 되기도 한다. 학교의 중앙 도서관 역할을 하는 밥스트 라이브러리(Bobst library)도 워싱턴 스퀘어 파크 바로 앞에 있다. 그곳이 사실상 NYU의 중심 캠퍼스다.
그래서 난 도서관 근처 브로드웨이에 있는 맥도날드를 학교 매점처럼 자주 드나들었다. 학교 식당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맥도널드에 가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그야말로 살아있는 영어가 춤을 춘다. 언제나 시간이 부족한 뉴욕에서, 그중에서도 가장 바쁜 사람들이 주로 찾는 맥도널드는 당신의 영어를 테스트해 볼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장소다.
2. 영어는 거리에서 태어났다
처음 뉴욕 브로드웨이의 맥도날드를 방문하게 되면 모든 영어 어휘와 문법을 완벽하게 장착하고 카운터 앞에 서더라도 당황하기 마련이다. 내가 알고 있는 영어와 그들이 사용하는 영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영어라도 입으로 나오거나 귀로 듣게 되면 완전히 달라진다. 알고 있는 영어와 하는 영어는 그만큼 다르다. 내 차례가 되어 주문을 시작하면, 뚱뚱한 흑인 여자가 짜증 섞인 표정으로 내뱉는 수없이 많은 What?을 견뎌야 한다.
잘 안 들려도 What?이고 못 알아들어도 What?이다. 물론, 동양인에 대한 차별이 섞여 있을 수도 있다. 내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의 압박을 견뎌가며, 겨우 겨우 샌드위치와 (그들은 햄버거라고 하지 않는다) 프렌치프라이와 음료를 밀(meal)로 (그들에게 세트는 없다) 고르고 돈을 지불하려는 순간 마지막으로 들려오는 말. “Here or to go.” 그 끝을 올리지 않더라도, 분명히 평서문이 아니라 의문문이다.

아니, 의문문이 아니라, 차라리 명령문이다. 둘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하니까. 여기서 먹을래? 아니면 가지고 갈래? 바로 하나를 골라 답하지 않으면, 똑같은 질문을 재차 해댄다. 대답이 잘 안 들리거나 우물쭈물 하면 바로 What? 이 날아와 내 귀에 꽂힌다. 더 짜증 나는 톤으로. 세상에서 불친절한 것으로 치자면 몇 손가락 안에 든다. 그래도 여기에 써 놓고 보니 무슨 말인지 바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최저 시급을 받으면서 하루 종일 주문 받는데 지친 흑인이 내뱉는 영어는 눈으로 읽는 것처럼 말랑말랑하지 않다. to는 온 데 간데없고, 나머지 세 단어도 한 뭉텅이로 짓이겨진다. 귀를 기울여 아주 열심히 잘 듣는다고 해도 [hierogo] 정도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단어다. 오랫동안 영어를 공부하고 가르쳤던 내 지식과 경험과 자존심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순간이다. 물론, 그곳을 여러 번 방문하면서 나도 그들의 패턴과 담화에 점차 익숙해졌지만, 처음 뉴욕 거리에서 만난 영어는 내가 아는 영어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사람들에게 난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혹은 한국에서 그렇게 배우지 않았는데 너희는 왜 그렇게 말하냐고 따져 물을 수는 없다. 물론, 물어서도 안 된다. 그들은 실제로 영어를 그렇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것이 바로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말을 왜 그렇게 사용하냐고 묻는 것보다 이상한 질문은 없다. 내가 배우고 가르쳤던 영어와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영어가 다른 것은 그들 책임이 아니라 오히려 내 책임이다.
습관처럼 사용하고 있는 언어에는 군더더기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그 이유를 밝혀내고 설명하는 것은 언어학자들의 몫일 뿐이다. 문법이니, 단어니 그런 것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었으면 원하는 것을 주문하면 되고, 못 알아들으면 그냥 조용히 뒤로 빠지면 된다. 맥도널드를 처음 방문한 그날, 나처럼 짜증 내는 점원과 한참 실랑이를 벌이느라 뒤에 서있던 사람들에게 원성을 듣지 않으려면.

솔직히 말해, 그들도 왜 그렇게 말하는지 모른다. 그들의 엄마와 아빠와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또 그 전 세대부터 그렇게 말해 왔기 때문이다. 아니, 중간에 변했을 수도 있다. 엄마와 아빠가 다르게 말하기 시작했다면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 새로운 사용에 동의했다면, 그다음부터는 그 달라진 영어를 배우고 익혔을 것이다. 또한, 새로운 단어와 용어와 사회적 변화들이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지금도 계속해서 조금씩 영어를 바꾸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틀리지 않았고, 그들의 엄마와 아빠도 틀리지 않았으며, 그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틀리지 않았다. 필요와 상황에 따라 언어가 달라졌을 뿐이고, 언어는 언제나 현재 사용하는 그 당시의 언어가 옳다. 오히려 과거에 그들이 사용하던 언어에 매달려 규칙을 만들고 잘, 잘못을 판단하는 우리 같은 언어 학습자들이 잘못이다.
3. 한국어도 영어와 다르지 않다
한국어도 마찬가지다.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와 대한민국의 말은 각각 다르다. 불과 100년도 되지 않은 시절의 우리말도 지금 들으면 어색하고 이상하다.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과거의 우리가 잘못한 것도 지금의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그 시기의 필요와 상황에 맞는 언어를 사용했을 뿐이다. 굳이 멀리까지 거슬러가지 않더라도 요즘 새롭게 사용되는 어휘나 신조어들은 얼마나 우리를 머리 아프게 하는가.
혹시, 요즘 정치권과 뉴스에서 사자성어처럼 사용하는 “내로남불”이라는 말을 아는가? 도대체 그 말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규범적 언어학 관점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사실은 그 말도 옳다. 현재 널리 잘 사용되고 있으니까. 주변 사람들과 제대로 의사 소통하려면 어쩔 수 없이 지금 여기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를 배우고 사용해야 한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흐르면 영어도 변하니까, 우리가 학교에서 책으로 배웠던 영어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죽은 영어일 수도 있다. 말이 글로, 다시 책으로, 다시 교과서로, 옮겨가는 과정과 시간을 고려할 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가 교과서로 배우는 영어는 몇십 년은 족히 된 영어일 것이다. 우리가 책 속에 죽어 있는 영어가 아니라, 펄떡거리며 살아 숨 쉬는 영어를 만나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은 책 속에 갇힌, 문법 문제에 등장하는 오래 묵은 영어가 아니다. 지금 유튜브에서 살아 숨쉬는 영어, 원어민들이 사용하고 사용할 수 있는 영어, 내 입과 귀에 익숙한 영어를 우리는 습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베스트셀러 문법책, 잘 나가는 강사가 쓴 단어책, 일타 선생님이 쓴 독해집은 버리고, 우리가 지금 현재 살아 숨 쉬는 영어를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어야 정말로 영어를 잘하는 것이다. 왜냐고? 영어는 거리에서 태어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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