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읽는 아이들

2023. 4. 2. 11:07영어교육

728x90
반응형
728x90

 

리터러시(literacy)는 우리말과 딱 맞는 적절한 단어가 없다. 굳이 번역하자면 ‘문해력’ 정도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해,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일컫는다. 한국어는 한글이 너무 쉬워서 인지 그 반대를 나타내는 ‘문맹’이라는 말이 오히려 더 많이 쓰인다.

세종대왕 덕분에 한글처럼 쉬운 소리 바탕의 문자체계를 가지고 있는 우리는 문맹률이 0에 가깝지만, 영어는 글자를 쓰여진 그대로 읽을 수 없어서 일일이 사전을 찾아 제대로 읽는 법을 익혀야 한다. 미국이 2020년 현재 성인 문맹률이 21퍼센트에 달하는 것도 다 그것 때문이다. 다섯 명 중 하나는 영어를 못 읽는다는 말이다.

 

 

세상이 변하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의미를 전달하는 힘이 구텐베르크에서 시작된 종이와 활자에서, 서서히 스크린과 다양한 기호들로 옮겨지고 있다. 단순히 의미 전달의 매체만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활자로 대변되던 기존의 의미 전달 수단도 다양하고 복합적인 기호들, 즉 색깔, 이미지, 심지어 영상까지 포함되면서 더 새롭게 바뀌고 있다.

 

 

어차피 컴퓨터에서는 활자나 영상이 동일하게 0과 1사이의 변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과거 종이 기반의 시대와는 다르게 다양하고 복합적인 도구들을 누구라도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더욱이, 인터넷을 통해 정보가 전세계로 더 쉽고 빠르게 전달되면서 더 많고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되어 문자만 읽으면 되는 전통적 리터러시를 넘어, 새로운 형태의 리터러시, 즉 뉴 리터러시(New Literacy) 혹은 멀티리터러시(Multiliteracies)가 필요한 시기가 도래했다.

 

종이를 기반으로 하던 시절에 글자는 판에 새겨 찍으면 그만이었지만, 그림이나 이미지는 전달하기가 용이하지 않았다. 더욱이 컬러나 각종 레이아웃은 구현하기가 힘들었고, 소리나 영상까지 함께 전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지금은 인기가 시들해진 종이 신문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신문의 건재함을 과시하던 뉴욕타임즈나 워싱턴포스트도 이제는 새로운 흐름에 밀려 인터넷 신문의 비중을 늘리고 회원제나 기사 검색과 같은 다른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책도 마찬가지다. 아마존의 킨들을 시작으로 여러 e북 단말기들이 등장했고, 스마트 폰 안에도 각종 e북 리더들이 들어 오면서 종이책은 점차 힘을 잃고 있다. 완전 대체는 불가능하겠지만 처음 예상했던 수준 이상으로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나만 하더라도 책이나 논문을 많이 봐야 하는 탓에 처음에는 책과 논문으로 방 하나를 가득 채웠다. 그러나 2009년 아이패드의 등장으로 지금은 거의 모든 논문과 책을 한 어플에 저장하고 필요할 때마다 불러내어 사용하는 실정이다.

 

 

이런 변화들이 갑작스럽게 등장한 것 같지만, 사실은 이미 1996년에 미국과 유럽의 학자들은 미국의 뉴런던에 모여 멀티리터러시의 방향성과 교육과 관련된 함의에 대해 논의하고 <하버드 에듀케이셔널 리뷰>에 논문으로 발표한 바가 있다. 이 후 그들은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 새로운 리터러시에 대한 연구를 거듭했고, 그 성과들을 계속해서 논문으로 발표해 왔다. 그런 멀티리터러시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게임이이다. 혹시, 사람들이 ‘리니지’나 ‘월드오브워’와 같은 다중접속온라인게임(MMORPG, Massively Multiple Online Role-Playing Games) 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그 세계에서는 참여자들이 수많은 정보를 텍스트, 이미지, 소리, 말 등으로 전달하고 전달받으며 공동의 목표를 향해 협력해 나간다. 그곳은 필요한 정보를 시각, 청각, 촉각으로 파악하여 정확히 판단한 뒤에 다른 팀원들과 전략적으로 협력하지 않으면 패배하는 세상이다. 그러므로 우리와 같이 디지털을 배우고 받아들인 디지털 이민자(Digital Immigrant)와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태어난 그들, 즉 디지털 원어민(Digital Native)과는 뇌 구조나 발달 양상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들이 게임, 즉 새로운 리터러시에는 열광하지만 학교에서는 흥미와 활력을 잃고 마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학교는 여전히 전통적인 리터러시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아무리 TV를 설치하고 프로젝터를 이용해 PPT를 틀어줘도, 일방적인 전통적 교육 방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지식은 선생님에게서 학생들로 전해진다고 믿으며, 학생들은 그 지식을 전달 받아 익히고 시험에서 잘 기억해 내는 것이 유일한 목표다. 얼마나 선생님의 의도를 잘 파악하고 많은 지식을 기억하고 있느냐가 좋은 학생이 되는 지름길이다.

 

그곳에 새로운 미디어나 리터러시가 내포하고 있는 지식의 보편화나 비판적 활용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다. 지난 10년 간 생산된 정보를 합친 것보다 많은 정보가 최근 1년 사이에 생산되고 처리되고 있지만, 학교에서는 아직 오래된 지식을 오래된 방식으로 가르치고 있다. 불과 몇 백 년도 되지 않은 공교육 제도가 새로운 기술의 발달과 변화로 조만간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경고를 믿지 않더라도, 커다란 변화의 바람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코로나로 인한 변화는 아주 작은 신호에 불과하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리터러시가 중시되는 세상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과연 새로운 리터러시가 지배하는 세상에는 어떤 인재가 필요할까? 여전히 가르치는 것만 기억했다가 시험만 잘 보는 바보나, 반 등수나 학교 성적에 집착하는 우물 안 개구리들만 길러낸다면, 멀티리터러시는 우리에게 게임처럼 홀대 받게 될 것이다.

 

혹시, 아이가 게임을 많이 해서 걱정인가? 그렇다면 아이와 함께 게임을 하거나 게임에 대해 이야기해 본 적이 있는가? 아이들에게 게임을 시키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부터 아이가 어떤 게임을 하는지 유심히 지켜보라. 그리고 함께 게임해 보라. 게임이 끝나면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아이가 다른 시각으로 게임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 주어라. 그것이 새로운 리터러시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아이들이 올바르게 성장하도록 돕는 길이다.

<참고 자료>

New London Group. (1996). A pedagogy of multiliteracies: Designing social futures. Harvard Educational Rev, 66, 60-92.

Ryu, D. (2011). Non-native English speakers' multiliteracy learning in BeyondGame culture: A sociocultural study. Journal of Online Learning and Teaching, 7(2). 231-243.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