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아이에게 영어보다 필요한 것

2023. 4. 2. 11:24영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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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쯤으로 기억한다. 왜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난 주산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내 산수 성적이 떨어졌거나, 엄마가 엄마 친구나 친구 엄마에게 무슨 말을 전해듣고 내린 결단이었을 것이다. 주판 하나와 9급 주산 책 한 권을 가방에 넣고 나는 매일 학교가 끝나면 더 놀지 못하는 아쉬움을 토로하며 학원으로 향했다. 왜 이런 것을 배워야 하는지 알지도 못 한 채, 일 자리와 십 자리 주판알을 올리고 내려 가며, 머리로 하는 편이 한결 수월한 두 자리 덧셈과 뺄셈을 굳이 주판을 이용해 풀고 있었다. 물론, 그 시절에는 주산이나 암산 전국대회가 자주 열였고 대회에 나가 상을 타오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러나 전자계산기가 보급되면서 주판은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되었고, 스마폰 앱 하나로 공학계산까지 할 수 있게 된 지금 주판은 아주 보기 힘든 진귀한 물건이 되었다.

 

 

 

아이 유치원에서 1주일에 한 번 영어책 한 권과 더불어 DVD를 집으로 보내온다. 그러나 우리집에는 그 DVD를 틀 플레이어가 없었다. 2000년 대 초에 노트북에 쓰려고 사놓은 DVD 플레이어 겸용 레코더가 기억나 집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당최 그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물건을 잘 버리지 않는 내가 어디에 잘 모셔 두기는 했겠지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태평양을 오가며 살아남았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이 더 우스웠다.

 

시대에 뒤떨어진 유치원이나 미국 직수입 학습지에 딸려 오는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면,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도 DVD로 영상을 보지 않는다. 물론, 현재와 미래와 과거가 공존하는 미국 같은 다른 나라에서는 아직도 DVD로 영화를 보는 사람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VOD가 나오면서 빠르게 DVD방이나 대여점들이 사라졌고, 요즘에는 영화와 같은 저작권이 있는 영상이 아니면 대부분 Utube를 통해 영상을 찾는다. 전통이 있는 유치원이어서 그렇겠거니 생각했지만, 매주 보내오는 DVD를 볼 때마다 어쩔 수 없는 세대 유감을 느끼곤 한다. 또한, 미국에서 출간된 어린이 시리즈는 대부분 CD나 DVD를 담고 있어서, 엄마나 아이들이 어떻게 사용할지 미리 계획하지 않으면 책과 함께 따라오는 별책부록은 모두 무용지물이 되고 결국엔 책 읽기로 끝이나 버린다.

 

 

Literacy는 한국어에 없는 영어 단어다. 요즘에는 한국에서도 맥락이 어울리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지만 그 용어를 음가 그대로 살려 “리터러시”라고 쓰고 읽는 경우도 있다. 이 단어를 굳이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읽고 쓰는 능력이다. 우리말에서는 읽기와 쓰기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지만, 영어에는 Reading이나 Writing과는 별도로 Literacy라는 용어가 있는 것이다. 내가 연구했던 분야와 깊이 연관되어 그 개념을 이해하고 확장하는데 시간을 보내면서 Literacy를 좀더 살필 수 있었다.

 

과거에는 문자와 종이가 의미를 전달하는 주요 도구였다. 그도 그럴것이 소리가 멀리까지 전달되기 힘들던 시절, 우리는 생각을 글로 적어 전달했고 책이라는 형태로 지식은 후대에 전달되었다. 그러므로 읽고 쓰는 능력은 의미를 이해하고 전달하는 기본적인 능력이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서구 국가들처럼 문맹률이 높은 나라들에서는 그런 문해 능력을 하나의 단어로 나타내고, 개념화하는 것이 중요했다. 한글처럼 불과 며칠 만에도 읽고 쓸 수 있는 완벽한 소리 글자가 아니라, 수많은 불일치와 예외가 존재하는 문자를 완벽하게 읽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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